태어나 처음으로 출장을 갔다.

5년이라는 연애시절 도 사내연애였으니,

예비군 동원훈련 말고는 단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결혼후 회사숙직때 떨어져 잤지만

집과 지근거리에 있는 회사는 떨어져 잤다는 생각이 한번도 든 적이 없었는데,

회사를 옮기고 무려 1주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떨어져 보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보는 출장.

1주일 동안의 긴 세월 동안 몸성히 잘 있어야 한다고

아내는 큰 가방에다 양말과 속내의... 세면도구 등등을 성성껏 챙겨

넣어 주었다..

"밥 꼭 챙겨 먹어요.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구..."

"알았어. 끼니 마다 꼭 챙겨먹을테니 염려 마.

글구.... 바닷가루 가니깐... 자기 좋아하는 특산물하구...

돌아오는 길에 경주에 들러서 자기 선물 사다줄께."

"선물?

자기 미쳤어? 돈 없어서 죽겠는데... 무슨 선물이야.

그냥 자기만 무사히 돌아오면 돼.

절대 선물 같은거 사가지고 오면 안돼... 알았지요?"

"하하... 사람도 참...."


그렇게 큰 이별이라도 하는 듯, 첫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뭐라도 하나 살려다가...

그래. 빨랑 돈 모아서 집사야지...

감격의 재회를 하는 순간.

아내는 내 손에 든 가방을 받아 그동안의 속내의 등을 꺼냈다.


그 순간.

난 아내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을 보았다.

순전히 내 자신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었겠지만

그 뒤로 한 동안은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무척 차갑다는 생각만 들었거든...


그리고도 몇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두번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남쪽 끝. 가는데에만 10시간이 걸리는 곳.

난 처음의 출장기억을 떠올리며,

역시 가방을 챙겨주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예전에 자기 선물을 사오지 못해서... 이번엔 꼭 사다줄께.

"자기 정말 미쳤구나.

지금 상황이 어떤 땐데...

정 사올려면 애들거나 사와."


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좋아할 만한 것들... 몇가지를 챙겼다.

양손에 든 선물을 보며 흐믓해 할 아내의 얼굴을 생각하며,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흐믓해 하는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진짜루.... 애들 것만 사 왔네."

그 뒤로 한동안 처음의 출장보다 더욱 더 싸늘한 아내의 시선을 느끼며, 결혼생활이란 것을 했다.


그리고도 몇년뒤.

미국보다 두배는 먼 나라엘 갔다.

길어야 1주일이던 출장이 두달로 변했고,

아내는 처음보다 훨씬 큰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겨 주었다.

공항에서 나는 말했다.


"여보. 나 없는 동안.... 문 잘잠그고..."

"걱정마요. 자기 밥 꼭 챙겨먹어. 술 많이 먹지말구..."

"그럼... 일하러 가는거지, 술먹으로러 가는건가?

돌아올 때 그 나라 특산물루 해서 정말 좋은 거 사다줄께."

"돈두 없으면서...

내 선물 같은건 신경쓰지마. 난 자기만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면 돼."

"아냐. 가자마자 자기 선물부터 하나 골라야지."

"아냐~ 그냥 하는 소리 아냐."

내 선물은 신경 쓰지마. 애들거나 하나 사오든가..."


두달의 시간이 지나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걸어 줄 목걸이와 소위 명품이라 불리우는 옷가지들을을 생각하며,

스스로가 흐믓해졌다.


집에 들어서서 아내에게 가방들을 넘겨주자 아내는 말했다.

"이런 거 뭐하러 사왔어요.

내가 사오지 말랬잖아~

어머.. 어머머...

자기 정말 미쳤어. 이렇게 비싼걸... 하나도 아니고...

진짜 미쳤어... 이 돈 다 어떻게 할려구..."

"걱정 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께."

목욕을 하고 저녁 식탁에 앉아서도 아내는 계속 궁시렁 거렸다.

"자기~

암만 생각해도 안되겠어.

저거... 당신이 사다준거 인터넷에 올려서 팔아버려야겠어.

아내는 내 한달 월급의 반은 차지하는 목걸이등을 정성스럽게 다시 포장하기 시작했다.

"한번 목에다 걸어보기라도 하지.."

내 말에 아내는 힐끔 쬐려보며 인상을 썼따.

아내는 내 말에 대꾸도 없이 목걸이와 옷가지들을 처음처럼 싸더니 장롱안에다 넣었다.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먹고 긴 여정에 지친 나는 일찍 잠이 들었는데,

시차 때문에 정작 잠을 자야 할 시간에 깨어버렸다.

물을 한잔 먹으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건넌방의 불이 켜져 있는 것 아닌가.

거실의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나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 봤다.

방안에는

명품 옷가지를 입고 목걸이를 한 아내가 거울 앞에 서서

한껏 웃음을 머금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을 보면서 처음, 그리고 두번째 출장후의

밥상이 어땠었는지....

그걸 지금에서야 깨닫는 바보남편의 모습을 느꼈다.

"여보... 그거 말야... 선물...

그거 진짜 팔거야?"

"그럼... 우리 형편에 그런건 어울리지도 않아.

괜히 겉멋만 들어서...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언제 팔건데?"

"인터넷에 내 놓든가... 아님... 동네 아줌마들 꼬셔봐야지.

근데... 그거 너무 비싸서 쉽게 팔리지 않겠지?"

난 가볍게 흥분된 듯 울려나오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야~ 이 굴비 정말 맛있다."로 대꾸했다.


난 안다.

내가 사다 준 그 선물이 언제 팔릴 것이란걸....

아내의 가벼운 흥분을 느껴서가 아니라,

출장 끝에서의 선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월급의 반을 차지한 비싸기만한 명품들이어서가 아니라,

더더욱 그것이 20년의 만남에서 첫 선물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는 것을...



가끔씩 들러보았지만
글은 처음으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