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사설탐정이 있었던가. 특정인의 뒷조사나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백20여명이 사설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정식호칭은 민간조사원. 한국민간조사원협회(KPI)에서 주관하는 특별교육과정을 거치고 최종시험에 합격해야 민간조사원(Private Investigator) 활동이 가능하다.

미행법·지문감식·법·의학·도청 등 다양한 분야를 익히고 현장에 투입되는 민간조사원이지만 아직 이들이 활약하기에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 수사권과 체포권이 확보되지 않은 채 단지 변호사의 위임장으로만 활동하는 터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활동하는 국내 유일의 여성 민간조사원 고은옥(24)씨를 만나봤다.


키 170cm, 몸무게 55kg의 대학 졸업반인 스물다섯살 여대생. 붉게 염색한 머리에 애띤 얼굴로 기자를 맞은 고은옥(24)씨는 그동안 인식돼있던 사설탐정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태권도 공인 4단, 경호무술 1단 등 남다른 이력을 가진 그는 지난해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국내 유일의 여성 민간조사원. 대학생활과 취업준비에 한창인 나이의 그는 벌써 경호원 경력이 5년차인 고참급에 속한다. 오는 8월 명지대 경영무역학부를 졸업하는 그가 보험사기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민간조사원이 된 과정이 재미있다.

중학교때까지만 해도 그는 태권도 선수와 육상선수를 겸했었다. 당시만해도 여군 또는 여경이 되겠다던 것이 그의 생각이었으나 경찰간부후보생이나 ROTC에서 여성을 채용하지 않자 자신의 꿈을 잠시 접는 듯 했다.

“조직과 체계가 오로지 남자위주로만 운영돼던 시스템이 싫었다”는 게 그가 밝힌 이유. 결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외국을 누비던 언니(29)의 영향으로 자신도 경영학도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 1학년부터 경호원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4년여간의 경호원 생활을 하던중 우연히 민간조사원을 알게됐고 지난해 최종시험을 통과, 벌써 2년차 민간조사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해결한 사건만도 벌써 20여건. 대부분이 보험사기와 관련한 사건으로 한달에 꼭 1건씩은 해결하면서 어느덧 보험사기 관련업무가 그의 전문분야가 되었다. 얼마전 끝난 월드컵대회에서는 세계 경제인들을 수행하는 경호원으로 활동, 스물다섯 나이에 민간조사원과 경호원 업무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베테랑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러나 그가 활동하는 데 거칠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사권과 체포권이 없어 변호사의 위임을 받아야만 조사가 가능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냈을땐 경찰에 연락,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모두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수사했던 피의자가 경찰의 검거로 신문과 언론을 통해 소개될 땐 왠지모르게 씁쓸하다”는 게 그의 말.

그러나 그는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스케줄이 있어도 1주일에 4∼5일은 꼭 10km씩 달리기를 하고, 태권도와 합기도 등 무술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지문감식법·미행법 등 보다 전문적인 민간조사원으로서 활동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조사원과 관련한 국내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요즘 그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여성최초로 민간조사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체포권과 수사권이 없어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데다 석사과정조차 마련된 학교가 없어 국내에서 경호학을 전공해야 할지, 외국에서 민간조사원 공부를 더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민간조사원 분야가 우리나라로서는 미개척분야이기 때문에 이 분야를 더 배우고 싶지만 관련법이 따라주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면서도 “일단은 민간조사원으로서 더 많이 뛰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일동포로부터 채권사기와 관련한 조사를 펼치고 있는 그는 “교육받는 여성들 중에서도 자신감이 없어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관심있고 자신에게 맞는 분야라면 대범하게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라도 여성 후배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싶다”며 “이 분야에 있어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창환 기자 [pia 협회 펌]